정인태 작가의 "나의 베트남" - 울고 싶은 사람 또 이용하기
정인태 - 국립한국복지대학교 특임교수
* 울고 싶은 사람 또 이용하기
한국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베트남 근로자를 가족처럼 대했다. 필자의 집에 데려와 재우는가 하면 매주 만나 식사를 했다. 정말 동생처럼 대했다.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나서 마음도 나누고 그렇게 3년을 함께 했다. 이 사람과 여러 계획을 세우고 베트남에 진출하게 됐다. 베트남에서 한국어 교육부터 시작하여 필자가 공들여 온 MBPA과학, 장애아동 발달재활교육, 유아체육, 유아교육, 심리학 등을 베트남에 보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전문학교 등을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멀리 보고 생애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베트남에 가자마자 변해 버렸다. 한국에서 함께 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냉정한 모습과 계산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그와 함께 기획한 회사에서 물러나게 됐고 거의 한 달 동안 호텔에서 생활하면서 하루하루 맥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강의를 정리하고 가족, 처가, 본가에도 모두 인사하고 왔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어떻게든 뜻을 펼쳐야 했다.
페이스북에 한국어 자료들을 올리고 학생들을 만나서 소통하고자 했다. 커피숍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공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등도 기획했다. 뭐든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외국어학원에 한국어 강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외국어학원을 찾아갔다. 마침 한국어반이 있는 곳이 있었고 필자는 거기서 세 반을 맡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택시비가 왕복 20만 동이 나오는데 강사료도 20만 동이었다.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것, 학생들 앞에 서서 가르칠 수 있다는 기쁨에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다. 금방 필자의 교실엔 학생들이 넘쳐나게 됐다. 그럴수록 필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가 있는 호텔에 매일 와서 100개의 문자를 보내고 기다리는 사람부터 자신이 고위공직자 부인이라며 필자를 위해 어학원을 설립하겠다는 사람이며 필자를 주석(회장)으로 영입하여 전국적인 어학원을 만들겠다는 사람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 왔다.
그중에 한 사람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일을 진행했는데 필자는 하루 9시간을 강의했고 첫 달에 학생 100명, 두 달째에 학생 200명, 세 달째에 학생 300명이 늘어났는데 그는 항상 회사에 자금이 없다고 했다. 장부도 비체계적으로 작성하고 필자의 비자를 책임져 줘야 할 텐데 비자를 가지고 계속 장난을 쳤다.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면 신뢰와 감동으로 따라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이후에 온 사람도 또 그 이후에 온 사람도 계속해서 필자를 이용하려고만 했고 정말 울고 싶은 사람 또 이용하기가 반복됐다.
베트남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정말 이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고 열정을 불태웠던 시간이었기에 그리고 베트남을 알아가는 시간이었기에 원망은 남아 있지 않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1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베트남어 공부와 여행, 베트남 알아가기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회사 먼저 급하게 설립하고 겪는 고통을 보면서 필자도 같은 모습이었음에 안타까움이 크다. 그로 인해 배운 것도 많았지만 참 아팠기 때문이다.